나누는 마음 (A sharing heart)
나는 3년전에 대한민국에 입국해서 지금은 서울의 한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탈북대학생이다.
I am a North Korean refugee who came to South Korea 3 years ago and I am attending a university in Seoul.
대학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나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많이 어렵다고 느꼈었다.
Even before I started going to university I felt that living in South Korea is difficult.
처음 하나원을 나와서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지만 그것은 반짝이는 혜성같이 금방 사라졌다.
When I first came out of Hanawon center I was full of hope, but this spark quickly disappeared.
그래도 나는 직업학교도 다니고 또 회사에 금방 취업도 되면서 내가 똑똑해서 잘된거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너무 교만한 생각이생각이였다는것을 깨닳은 것은 직장 다니고 나서 일년후부터였다.
Despite this I attended vocational school and found a job almost immediately so this made me think that I am very smart and everything will be fine.
I will get a bigger salary and will manage things better than the other people. However after I worked for a year I realized that I was very conceited thinking this way.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었고 과연 내가 계속 이길로 가는 것이 옳은가 하루에도 몇번이고 반문하였다.
It was getting harder and I asked myself several times a day whether what I was doing was really right.
그렇지만 그냥 그만두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직장이였다.
However it was quite inconvenient to just quit my job.
환경도 좋고 또 앞으로 나의 발전에도 좋은 직장이였다.
The environment there was nice and it also provided me with opportunities for professional development.
그렇지만 웬지 나는 갈수록 힘들었고 하루하루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For some reason, however, the more I persevered the harder it got.
무엇보다도 건강이 안좋았다.
Most importantly I wasn’t healthy.
혹시 직업병일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진로를 탐색해보기로 결심했다.
I thought it might be because of occupational illness and decided to search for a new path in life.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많이 고민하던 대학입학에 대해 생각했다.
That’s why I started thinking about getting into university, a thought that worried me a lot in the past.
내가 학교가는 것을 조금 주저했던 것은 내가 나이가 많다는것이다.
Since I am a little bit older, I hesitated about going to school.
그렇지만 나는 여러가지를 생각한끝에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However, after thinking it through, I decided to do it.
학교생활 역시 쉽지 않았지만 직장생활보다는 훨씬 즐거웠다.
Student life was not easy but it was much happier than work life.
우선 좋았던 것은 내가 나와 같은 탈북자들을 만날수 있었다는것이다.
The thing I liked most about it was that I could meet other North Korean refugees like me.
솔직히 나는 내가 탈북자 이면서도 거의 같은 탈북자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Actually, although I am a refugee myself, I couldn’t meet others like me.
중국에서 7년동안 숨어지내는 동안에 나는 내자신도 탈북자임을 숨겼고 또 탈북자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While I lived in hiding for 7 years in China, I didn’t reveal that I was North Korean and didn’t want to meet other refugees.
한국에 들어와서도 친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Even when I came to South Korea, I did not have many chances to get in touch with other North Koreans, except for a few very close people.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기보다도 내가 그다지 탈북자들을 잘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야 정확할거 같다.
More precisely I’d better say that I didn’t really want to meet any refugees, rather than not having a chance to.
그런데 대학생활은 나의 그러한 페쇠적인 생활패턴을 확 바꾸어버렸다.
However university life changed my unsocial lifestyle.
캠퍼스에는 꽤 많은 탈북 대학생들이 있었고 만나지 않으려 해도 만나게 되였고 또 자꾸 만나다 나니 정보교환도 꽤 되였다.
There were a lot of North Korean students on campus and even if I had decided not to meet with them, I still did and as a result we exchanged a lot of information.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나는 탈북학우들이 너나 없이 따뜻한 마음과 열정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고 나의 이기적인 타산의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As time passed by, I felt that all my North Korean schoolmates were good-hearted and passionate, and I was ashamed of my selfishness.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주고 또 공부도 여기 남한 학생들 못지 않게 하고 있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I was very surprised to see that they considered other people’s pain their own, helped each other and study just as well as South Korean students.
나는 이제까지의 소심한 나의 생활에서 탈출하여 새친구들을 사귀고 새 마음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리라 결심했다.
I have decided to escape from the timid life I have led so far, to make new friends and to study hard with new determination.
나한테 또 하나의 큰 선물이 생긴 것은 올 겨울 방학부터였다.
I received another big present this winter vacation.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단체에서 무료로 일대일 과외 선생님을 보내준 것이다.
PSCORE provided me with a private language tutor for free.
나는 영어와 불어를 신청했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줄 알았던 불어선생님이 바로 먼저 생겼다.
I had applied for classes in English and French and although I thought it would be hard, they found me a French teacher first.
방학동안에 나는 열심히 불어와 영어공부를 했고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나의 실력은 훨씬 향상되였다.
During the vacation I studied hard English and French and due to the efforts of the teachers my skills improved.
내가 그들로부터 감동을 받았던 것은 나누어주는 마음이였다.
I was deeply touched by their sharing hearts.
추우나 바람부나 비오나 힘드나 그들은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고 먼데서 나를 찾아와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었다.
No matter whether it was cold, or windy, or rainy, they never ignored our appointment and traveled a long distance to teach me whole-heartedly.
아직까지도 나만을 위하고 나의 울타리에 갖혀 있는 나에게 그들은 정말 아름다웟다.
Until this day to me it seems that they have hearts of gold.
한국에는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There are many people like them in South Korea.
뉴스에서 티비에서 안좋은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들은 숨겨져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 한국인거 같다.
Although news and TV are full of bad stories, actually there are many good ones unknown to the wide public.
1년 남짓한 대학생활에서 나는 지난 몇 년간 만났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졌다.
After more than one year of studying at university, I met and made friends with so many more people than before.
내가 마음을 열고 새로운것에 도전할 때 더 많은 아름다운 것이 내게 온다는 것을 깨닳았다.
I realized that when you open your heart and challenge yourself with new experiences, there are many wonderful things that come to you.
내가 받은 이런 마음을 저 북녘땅에 전해줄날은 과연 언제 일가?
When would this kind of thinking be transferred to North Korea as well?
오늘 늦게 캠퍼스를 나서는 데 밝은 혜성이 하늘을 그으며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두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When I left the campus late this evening I saw a falling star cutting through the sky. I joined my hands together and made a wish.
2009.3.18
Translated by Teod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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