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바람이나 새가 되지 않더라도 그곳에 가기 위해

 

  6·25 전쟁이 일어 난지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남북관계는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을 통해 풀어졌던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냉각됐다. 특히 올해 들어 북한은 위성발사를 시도 하고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는 듯 강경노선을 외치며 남한에 대한 압박을 계속 하고 있다. 예전에 가깝지만 먼 나라 하면 일본을 얘기 했지만 지금은 북한을 얘기 하는 게 더 옳게 느껴진다.

  남북이 분단된 건 6·25 전쟁이 있기 이전이다. 남북분단을 해방 직후로 본다면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포끼리 마치 원수라도 된 듯 총칼을 들이대고 지낸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남과 북의 분단에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전선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유민주주를 외치며 소련과 경쟁적으로 군비를 키우던 미국의 대리전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 북한의 최대 우방이었던 소련은 붕괴되었고 중국도 자유경제 활동을 단계적으로 도입하였다. 북한은 어느덧 세계 최고의 폐쇄적인 나라이자 20세기 들어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세습 군주제를 갖춘 독재자의 나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레닌과 스탈린은 공산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소련)을 건설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지도자가 된 시점이다. 스탈린은 정권을 잡은 뒤 대대적인 숙청을 시작하였고 그 숙청으로 사망한 숫자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희생된 자국 국민의 숫자를 훨씬 웃돈다는 것이다. 또 권력에 맛을 들인 스탈린은 독재정권을 수립하여 수십 년의 세월동안 권력의 정점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수많은 나라들이 독재를 경험했고 독재의 횡행 속에서 국민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도이다. 북한이 고향인 외할머니는 북에 형제와 친척들을 남기고 6 · 25 전쟁 때 남으로 피난을 오셨다. 그런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우리 어머니도 북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늘 관심 있게 보신다. 예전에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북한에 관한 뉴스를 보던 중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뉴스에선 북한의 아오지 탄광에서 많은 이들이 얼어 죽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린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내가 바람이나 새가 된다면 좋으련만’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아마 외할머니께서는 혹시 할머니 형제가 말실수를 해서 정치 사범이 되어 저곳에 끌려가지나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드셔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구나.’라고 대답하셨다. 그때는 내가 나이가 어려서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7~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에서 말 잘못하면 남산으로 잡혀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옛날 생각 하면서 말씀 하실 때 보면 그때는 술집에서 대통령에 관해 욕한 사람이 다음날 사라지곤 하였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올가미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수용소에 갇히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 간에 불신감이 만연하게 된다. 결국 이런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대우란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외할머니는 일제시대와 독재정치를 지나오면서 그런 상황들을 모두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마 바람이나 새가 되어 북한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이 무사히 있는지 사무치게 알고 싶으셨을 거다.

  우리 또래의 아이들에게 북한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저 멀리 태평양 건너의 미국보다 더 가기 어려운 나라, 지독히도 못 사는 나라, 세계적인 골칫거리인 나라. 언젠가부터 북한과 우리가 같은 피를 나눈 동포이자 형제라는 걸 잊고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경제논리 하에서 다른 나라들 간의 경쟁, 그리고 동료들 간의 경쟁, 경쟁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들을 잊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동포의 나라가 아닌 무서운 나라가 돼버렸다. 그래서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 통일이란 해봤자 귀찮기만 한 일이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잘 살고 있는데 굳이 통일을 해서 뭐하냐고 말한다. 이미 통일하기엔 너무 늦었고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불편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뭐 하러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한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북에서 내려오신 분이다. 아마도 지금 이곳 남쪽에 사는 많은 이들이 멀든 가깝든 모두다 이산가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직계 가족이 이산가족일 수도 있고 멀게는 친구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북에서 내려오신 분일 수도 있다. 결국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북한과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북한 관련 뉴스를 떠올려보자. 북한의 많은 어린이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뼈마디가 앙상히 드러난 채로 초점 없는 시선을 카메라에 보냈다. 어렸을 적 삐쩍 마른 애들을 보면 소말리아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 놀림을 해선 안 되는 거였지만 그 당시 소말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보면 뼈마디가 앙상히 드러난 채 배만 뽈록 나온 사진을 보면서 많은 아이들이 마른 아이에 관해 놀릴 때 지칭하는 단어가 됐었다. 우리는 아직도 아프리카 하면 굶주림, 가난,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동포, 형제가 살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굶고 있으며 굶주림에 쫓겨 두만강을 건너 자신의 몸을 파는 여성들도 있는 곳이 북한이다. 독재정권이 세습되면서 권력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귀족 같은 생활을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의 정식명칭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민주주의란 단어가 무색하기만 하다. 국민은 나라의 일꾼일 뿐이지 주인이 될 수 없다. 이미 북한에 사는 일반 국민들에겐 그런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들에게 인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북한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끌고 일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면 어떤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른다. 반백년을 넘게 독재정치에 물든 사람들에게 갑작스런 민주주의에 대한 주창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김정일 주석의 건강이 악화 되면서 김정일의 아들이 김정운이 그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드디어 전쟁을 겪지 않은 3세대 지도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김정운은 냉전시대도 겪지 않았으며 이념교육에 그리 치중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제 3세대 지도자로의 전환, 김정운이 지도자가 된다면 이런 점에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변화를 시도할 만하다.

  우선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선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식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 되는가? 바로 교육이다. 북한의 경우 어렸을 적부터 철저한 주체사상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신격화하여 독재를 정당화 하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에 들어가 교육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북한과 남한의 문제는 늘 그렇듯 급하게 가선 안 된다. 천천히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

  남북경협이란 말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남북 교육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분단국가가 된지 60년이 지나면서 남과 북은 맞춤법과 쓰는 말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교육 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남과 북의 학자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 하는 게 중요하다. 학자들 간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남북 공동 교과서 편찬을 할 수 있다면 남과 북의 괴리감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동 교육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인식을 어렸을 적부터 조금씩 변화 시키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남북 교협을 통해 남과 북의 학자들의 교류를 좀 더 활성화 시키고 그런 교육 활성화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관한 의식 확대를 겨냥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남과 북의 문화차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남과 북의 문화차이를 차츰 줄여나가는 방법에는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매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2000년대 들어 한류가 일으킨 열풍은 아시아를 휩쓸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드라마 ‘대장금’의 팬이라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듯 거센 한류 열풍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어를 배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드라마는 남과 북의 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큰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재작년 남과 북이 공동으로 제작한 드라마 ‘사육신’은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져 시청률에 있어선 외면을 받았지만 남과 북의 문화 교류에 대한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사육신’을 계기로 해서 정부 자체에서 남북 문화교류를 좀 더 활발하게 이어 나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남과 북의 문화 차이를 크게 좁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드라마를 통해 문화교류의 장을 확장하고 차츰 문학과 영화 등 우리의 대중문화를 통해 북한 사람들 간의 거리감을 좁혀 나간다면 통일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나라와 나라간의 경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세계화를 외치고 무한경쟁을 추구 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북한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와 같은 피와 얼굴색을 가진 한민족의 나라인 북한을 외면한다면 그건 알맹이가 비어있는 껍데기뿐인 세계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화를 추구하고 21세기를 열어가는 성공적인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북한과의 통일 문제, 그리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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