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남

경남대 북한대학원 대학교 (사회문화 전공)

 

 

‘유혹(誘惑)하지 말고 리드(Lead)하라’

 

통일부가 주최하는 ‘북한정세분석 토론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택시에 앉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목적은 남북화해와 통일에 관한 문제인데 방법에 있어서는 결론이 없다. 통일부관계자들이나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지어 북한을 너무도 잘 체험하고 있는 우리 탈북자들마저도 자기 나름의 주장들을 하고 나서 머리가 온통 범벅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결론 없는 사회, 뭔가 명백한 방향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그런 사회에 대한 의미가 아닌가하는 혼란마저 들었다.

 

광화문을 지나 택시가 시청광장을 가까이 할 때 차가 막히면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지나갔다. 머리띠마다 ‘단결, 투쟁’이라는 글들이 새겨져 있고 ‘민주노총’, ‘시민연대’라고 쓴 붉고 노란 기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오늘도 무슨 집회가 있는지 시청광장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있고 ‘광야에서’라는 민중가요가 확성기를 통해 우람차게 퍼지고 있었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 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나도 너무 좋아하는 민중가요이다.

자기의 목적과 정당성을 위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투쟁을 외치는데 이제는 1만 5천명이 넘어선 우리 탈북자들은 흩어진 낙엽처럼 방향이 없다.

 

통일을 주장하고 북한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한다고 소리치며 다녀도 함께 모여 부를 수 있는 ‘북한민중가요’ 하나도 변변히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 우리 탈북자 단체들이나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단체들의 씁쓸한 현실이다.

 

나 자신도 금방까지 통일부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태’가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의 결과”라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과 책상을 두드리는 논쟁을 벌였다. 통일에 대한 마땅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공허한 입씨름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과연 통일의 대안일까?

 

과거 10년의 결과가 너무도 명백한 오늘의 현실에서도 꿈같은 ‘햇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대중 정권이 ‘햇볕정책’을 들고 나왔을 때 북한은 노래 한곡 지어 모든 주민들이 부르게 했다.

 

검은 구름 몰아치고 유혹의 바람 불어도

향도성 따라서 사회주의 나간다…

 

‘제국주의자들’의 달콤한 유혹은 죽음이라는 내용이다.

과거정권이 ‘햇볕정책’을 외치면 외칠수록 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대신 남한에서 북으로 향하는 돈 보따리는 커지기만 했다.

 

과연 ‘햇볕정책’의 승리자는 누구였고 피해자는 누구였던가?…

 

정작 북한 당국자 앞에서는 ‘햇볕정책’의 정당성이나 ‘개혁개방’이라는 말 한마디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 것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본 지난 두 정권의 허무한 현실이다. 이러한 그들이 세상을 향해 아직까지도 잘 못된 정책에 대한 사과 없이 열심히 변명이나 하고 있으니 이제는 구차함을 지나 ‘희한한 감동’까지 느끼게 된다.

 

‘햇볕정책’의 본질은 ‘유혹’이다.

 

굶주리는 북한에 먹을 것도 주고 돈도 좀 쥐어주고, 얼리고 달래서 결국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유혹’은 달콤한데 체제의 생존이 걸린 놀음에 그들이 과연 말려들까?

 

초등학교 졸업반인 딸애가 게임에 빠졌을 때 나는 유치한 ‘구제작전’을 펼쳤던 적이 있다. 게임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매일 3천원의 돈과 함께 ‘숏다리’며 땅콩, 과자 같은 간식들을 듬뿍이 사주어 동무들과 나눠 먹으라는 이른바 우리 가정식의 ‘햇볕정책’이었다.

 

딸애는 며칠 동안 정말 게임을 안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딸애가 갑자기 과외 공부를 하겠다며 학원에 보내 달랜다.

‘으쌰~ 이제야 공부에 재미를 느꼈구나…’

기분이 들뜬 김에 없는 돈 챙겨 주변 학원에 넣어주었고 그날부터 딸에는 학교에서 오면 곧장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얼마 후 학원원장으로부터 딸애가 학원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공부도 제일 낙후하다는 전화였다. 학원에 이름만 걸어놓고 그사이 내가 꼬박이 챙겨주는 3천원을 가지고 몰래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참담한 결과였다.

‘내일부터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해라’고 엄포를 놓자 대뜸 딸애가 한다는 말이 ‘그럼 아파트에서 뛰어 내릴래’, ‘아빠는 내가 가출하면 좋겠어?’라는 선전포고였다. 창피한 가정사이지만 ‘유혹’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유혹’은 던질 만 한 상대가 있다.

‘유혹’이라는 자체가 좀 비열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돌이켜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인간이나 집단에 어떤 정의의 목적으로 행한다면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생존을 건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놀음이라면 어떤 ‘유혹’도 먹혀들 수 없으며 그것이 인간적 감각을 상실한 존재일 때에는 오히려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퍼주면 퍼줄 수록 배짱놀음을 벌리는 김정일 정권 앞에서 ‘햇볕정책’은 파산이 명백한 ‘유혹’작전이었다. ‘유혹’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우리 국민은 핵과 미사일이라는 ‘민족의 생존’이 걸린 족쇄에 얽매여야 했다.

 

민주주의와 자유!

 

하나 된 조국을 위해 너무도 많은 노력들이 있었고 그나마 많은 실천을 보여준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었다. ‘햇볕정책’이 참으로 원칙이 있고 서로를 꾸준히 깨우칠 수 있는 정책이었다면 결과도 좋았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매일같이 미사일을 날리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햇볕정책’이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햇볕정책’이라는 그늘 밑에서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연구를 꾸준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 날 갑자기 그토록 엄청난 자금과 기술력이 집합된 ‘핵’, ‘미사일’ 실험들을 연일 벌려 놓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결국 ‘햇볕정책’은 썰렁한 추파를 던져 강도를 ‘유혹’하려다 돈을 떼이고 뺨이나 얻어맞은 기구한 창녀의 ‘쇼’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북한민중에 대한 탄압만 심화시키고 우리 국민의 피 같은 혈세를 빼앗아 김정일의 배를 불려준 가슴 아픈 역사였다.

 

선진강국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 한류의 세계화가 보편적인 현실이 된 오늘 우리는 보다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세계적인 리더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울러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원칙과 소통’을 통해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설득해 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 경제대국을 만들어 낸 땀 배인 체험도 있고, 꾸준한 투쟁을 통해 ‘민주화’의 길을 개척한 소중한 경험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가 향유하는 소중한 ‘자유민주주의’는 몇 사람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 진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선진 강국으로 만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민의 힘과 정의를 통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가 이루어 졌다.

 

마찬가지로 리더십도 어떤 상징적인 인물 하나에 의존되는 역사가 아니라 의식화된 국민, 성숙한 집단이 만들어 내는 창조의 과정이다.

 

북한이 ‘핵’이라는 대량살상 무기로 남한을 위협하고 나선 이상 남북 통일문제와 북한 민주화는 더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우리 국민 모두에게 사활(死活)을 건 투쟁으로 변했다. 현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리더가 되고 꾸준한 설득자가 되어 민족의 생존이 걸린 통일문제와 북한 민주화를 위한 길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는 민족통일, 국토통일, 한반도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성숙된 리더의 자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 정권의 통일정책인 ‘비핵 3천구상’ 역시 과거정권의 ‘햇볕정책’이라는 ‘유혹’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긍정적이라면 책임과 원칙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 다를 뿐이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썰렁한 ‘유혹’의 바람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리더의 역할을 보여줄 때이다. 과거 정권이 그러했듯이 언제까지 북한에 끌려만 다니고 북한이 조장한 사건들에만 매달려 허구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리더의 위치에서 북한 민주화와 통일을 일쿠어 낼 여건은 충분히 마련되었다. 그 길은 과거 북한 정권이 ‘대남적화통일’을 위해 닦아 놓았고 피눈물 나는 탈북의 길을 통해 탈북자들이 만들어 놓았다.

 

우리 정부는 다만 원칙적 입장에서 그 길을 이용만 해도 충분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여기에 개별적 집단이나 시민단체들이 광범하게 동참하면 북한 정권은 저들이 판 함정에 스스로가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북 민족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너무도 많다. 그 많은 숙제들을 함께 풀어가는 과정이 곧 북한 민주화를 위한 과정이고 남북통일을 이루어 내는 열쇠이다.

 

통일을 위한 길에서 ‘좌’나 ‘우’를 가리면서 기싸움이나 벌리던 시대는 이제는 지나갔다. ‘좌’든, ‘우’든 남북 간의 접촉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곧 통일을 만드는 시간이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누구를 가림 없이 ‘소통’의 장을 만들고 또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통일이고 북한 정권을 민주화의 심판대에 끌어내는 길이다.

 

원칙이라는 입장만 명백히 하면 남북 대화나 소통에 어떤 두려움도 없다.

 

실례로 과거 정부가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되던 ‘남북 이산자 가족상봉’을 금강산에서 하도록 북한에 양보한 행위만 보아도 그렇다. 왜 우리 정부는 국민에게 똑바른 설명한마디 없이 북한의 고집을 수용해야 만 했는가?

 설사 우리 정부가 북한의 고집을 수용하더라도 그 과정에 대한 설명만 광범위하게 펼쳤다면 북한은 헤어날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이고 저들이 주장하는 ‘통일’론이 얼마나 파렴치한 행위인지를 우리 국민이 새삼 느끼는 기회로 되었을 것이다.

 

‘8.15범민족대회’나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 ‘6.15실천연대’와 같은 친북단체들에 대해서도 정부는 늘 의혹의 눈길로 외면하며 리더의 모습으로 이용할 생각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친북 단체들이 북한으로 간다면 더 많이 가도록 밀어주고 또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회의도 하고 축제도 하도록 적극 조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8.15 범민족대회’는 꼭 평양에서만 치루며 남한은 남한대로 제동을 걸고 북한은 북한대로 인원을 선별한다. 그러지 말고 북한은 북한이 하는 대로 내 버려두고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초청하고 이러한 사실들을 언론을 통해 적극 홍보하면 북한이 얼마나 긍지에 몰리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남도 북도 제가끔 외쳐댄다. 언제 한번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고 ‘우리 땅 독도 지키기 행사’를 남북이 함께 열자고 제안한 적이라도 있었는지?

 

‘8.15 국토종단 통일 대행진’은 꼭 백두산에서 평양까지, 한라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진다. 이런 반쪽짜리 행진을 하면서도 이름은 번듯하게 ‘국토종단 통일 대행진’이란다. 남한의 통일단체들이 언제 한번 북한에 ‘백두-한라 국토종단 통일 대행진’을 제의하고 이를 정부가 승인해 준 일이 있었던가?…

 

밤낮 친북을 외치고 북한의 대남선전을 그대로 외우는 사람들도 누구하나 북한에 가서 살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해마다 수천 명씩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행렬이 줄을 잇고 있지만 90년대 이후 월북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현실이 다 보여주는데 이제 정부가 북한에 대해 뭘 더 주저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 선수단들도 북한으로 보내고 북한의 선수단도 남한으로 초청하고, 북한에 종자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영농법을 가르쳐 준다 야단들 떨지 말고 북한 주민들이 직접 찾아와 우리의 우월한 농사법을 배우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북한이 보내주지 않는데 꿈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북한이 먼저 제안하고 만들어 놓은 일들이다. 그런 만큼 우리가 길만 열어주면 북한도 궁색하게나마 변명을 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통해 김정일 정권의 ‘반통일 정책’들이 하나 둘, 폭로되면 북한 민주화의 길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최근엔 대북방송을 듣는 북한 주민들도 점점 늘고 있어 웬만한 소식들은 북한 주민들도 다 알고 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탈북자들이 가족들과 소식을 전하고 돈을 보내주는 과정을 통해서도 남한의 경제제도와 사회적 우월성은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잔머리를 굴릴수록 우리는 뼈대 있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들이 대화와 소통의 마당에 끌려나오게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북한의 통치자들이든 민간인들이든 남한에 대해 많이 보고 느끼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체험을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리드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2012년을 ‘사회주의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정하고 갖은 몸부림을 쳐 보지만 결과는 뻔하다.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거세질수록 그들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방증할 뿐이다. 언젠가 통일은 오고야 말겠지만 우리의 보다 성숙하고 대범한 노력이 그 길을 훨씬 앞당기는 기회로 되리라고 본다.

 

이제는 유혹(誘惑)하지 말고 리드(Lead)해야 한다.

 

서울시청광장에 북한 민주화를 절규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탈북자들이 지은 북한 민중가요가 남북에 메아리 칠 그날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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