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손서영/ 학교: 연세대학교/ 전공: 정치외교학과/

 

 

새로운 대북정책 패러다임; 담론을 넘어 삶 속으로 파고들기

(“민속 문화 연구”를 위한 남, 북 공동 국책연구기관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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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상처투성이 논쟁을 통해 전진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극단적 이념에 매몰되어 지엽적인 부분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아닌 이상, 치열한 논쟁은 그 자체로도 얼마든지 생산적일 수 있다. 논쟁이 학문의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이 정책으로 구체화되어야 할 시점에서도 논쟁만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소모적일 뿐이다. 대북정책은 그 어떤 정책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대 북한 문제가 남한과 북한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닌 이상, 여러 가지 상황의 고려가 필요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격하게 변하는 국제 정세, 북한이 갖는 국가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 포용 정책에는 공과 과가 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유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비핵. 개방 3000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안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바로 그 유연함의 부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빠진 부분이 바로 은근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 3000달러를 달성시켜 북한 사회를 개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실용성과 구체성에 있어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이러한 대북정책의 기저에는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의 붕괴란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기에 결코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보다 간접적인 형태의 대북정책 재설계만이 경색 국면의 남북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한반도 통일 모델을 창출해 낼 수 있는 효과적 해법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북정책은 대부분 정치, 경제적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 정책적 접근은 전무하다. 일회적인 문화 교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행사 차원일 뿐이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정책에서의 문화적 접근이 중시되고 있다. 문화적 접근은 다소 경직되고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정책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유일하게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이런 부분이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본 에세이에서는 ‘남, 북한 민속 문화 공동연구와 교류를 통한 북한 사회의 점진적 변화 유도’라는 주제 하에 대북정책에서 문화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고자 한다.

 

 

 분단 64년,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한민족인 남, 북한 주민들의 체형이 달라지고 있을 만큼 다른 체제와 환경 속에서 남북은 멀어지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도, 그리고 통일 이후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질감의 극복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이 공통적으로 보인 한계는 바로 당면한 남, 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이란 목표만을 위한 접근 이상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질성의 극복, 다시 말해 한민족이란 동질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접근이 대북정책에 필수적으로 가미되어야 한다. 물론 남, 북한은 해방 후 분단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이념적,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기간의 역사와 문화를 지금 당장 공동으로 논의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 북한이 명백히 공유하는 그 이전의 과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이념적 괴리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남한만의 혹은 북한만의 역사가 아닌 만큼 반드시 공동의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민속 문화 연구소(가칭)’와 같은 국책연구기관을 남, 북한이 공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민속 문화란 전통문화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풍습 등으로 주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 근거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민속 문화는 전통 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가치는 물론, 민초들의 일상적 삶이 그대로 담긴 살아있는 역사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더욱이 남, 북한의 특수한 이념적 대립과 분단 상황 하에서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라는 점에서 유용성이 큰 연구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한반도는 지금보다 영토적으로도 더 넓게 분포해 있었기에, 북한 지역과의 공동 연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에 대응하여 과거 부여, 고구려 등 현재 중국 영토 하의 한반도 역사의 빈 페이지를 복원해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공동 연구가 더욱 긴요하다. 물론 중국과 북한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역사와 문화의 연구는 초기 ‘민속’부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연구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초기 북한에 제의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의도가 정치적 논리와 관계없이 순수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앞서 학문과 정책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만약 연구에 그친다면, 이는 학문적 논의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북정책의 또 다른 접근법으로 생각한다면, 이를 정책적으로 활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첫째, 북한과의 지속적인 교류의 매개체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 국면에서 개성공단 사업마저 그 지속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 경제 모든 부문에서의 교류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북한과의 접촉 또는 협의 가능한 채널은 없는 상태다. 북한이 계속해서 남한과의 대화보다는 미국과 양자 간 대화를 선호하고 추진한다면, 통미봉남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뒤늦게 대화에 나서려고 하면, 북한은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한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대북정책은 여지없이 ‘퍼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변수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교류가 보장되고 용인되는 확고한 채널이 있다면, 남북 관계의 안정성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이 남북 민속 문화교류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정치적 논리와 관계없이 이를 유지하는 인내심을 보인다면 북한도 이를 통한 대남 연결 고리를 놓지 않을 것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정치적 논리와 무관한, 하지만 민간 차원 이상의 격상된 문화적 교류와 공동 연구 기관을 두는 것은 손해가 아니다.

 

둘째, 북한 사회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비핵. 개방 3000을 대북정책의 모토로 제시하고, 북한 사회의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날 시장경제와 유사한 경제구조, 정책, 민간의 풍습 등이 있음을 발견한다. 사실상 북한 사회에는 현재에도 비공식적인 시장이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도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돈주’가 있으며, 한 통계에서는 북한 주민의 70%가 직. 간접적으로 시장경제에 관여한다고 보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북한 사회가 내부적으로 시장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 일종의 계획경제의 변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북한 사회에도 시장이 있고, 상거래를 통한 경제적 변화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뚜렷한 생산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북한의 GDP와 경제성장률이 증가한 것도, 이러한 내부에서의 시장 제적 거래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북한 권력자들은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암암리에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요구하는 형태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거부감만을 가져올 것이다. 국민소득 3000달러의 달성과 같이 경제규모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북한 권력자는 없을 것이다. 일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이 바탕이 되어야, 그들의 정치적 논리가 효과적으로 하달될 수 있고 민심 이반의 가능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선례를 통해 봐왔듯, 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이어질까 그들은 동시에 두려워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대북 메시지는 당연히 소통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는 민속 문화의 공동 연구와 현실사회에서의 접목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다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의 5일장, 시전, 장시 등과 같은 형태로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시장 경제적 요소들을 민속 문화의 차원에서 검토해보고 북한 사회에 이식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남한은 조바심을 버리고, 북한 사회가 역사와 문화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시장 경제적 요소를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야 한다. 또한 공동 연구 과정에서 민속 문화가 단지 과거의 박제된 역사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현대에서의 새로운 가치를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낙후된 북한의 농업 생산성 문제를 단지 비료와 쌀 제공, 현대적인 기계 제공 등의 문명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않고 전통의 지혜와 현대의 기술 조화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생산성 제고를 연구해보는 것이다. 북한의 적극적 이행 노력과 참여의지를 전제로 남한은 재정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정세 변화에 따라 불균형한 쌀, 비료 지원 등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체적인 생산성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의 역사와 문화 연구가 단지 학문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실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남북한이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다. 현재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의 ‘자존심’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 그리고 남한사회의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명실상부하게 실체를 갖고 있는 하나의 국가이다. 그것은 정통성 문제와 별개로 현실이다. ‘민속 문화 연구소’와 같은 공동 국책 연구기관의 설립은, 일단 암묵적으로 북한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형태다. 북한은 이를 통해 명분을 갖고 협력에 참여할 수 있고, 남한은 정치적인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대북 접근이 가능해진다. 지금과 같이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급랭하는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경협에서 북한은 대등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한 관계로 협정을 맺지만, 실질적인 이행과정에서 남한은 갑이 되고 북한은 을이 된다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다. 그것이 북한으로부터 지속적인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보다 유연하고 간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문화적 차원의 대북정책 수립은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끝없는 러브콜과 지원은, 단기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 보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단호한 태도, 즉 철저히 주고받기에 입각한 협상 태도는, 단기적으로 남한에 이익이 되고 북한의 고립을 통한 극적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리란 기대를 하게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모든 대북정책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등한 관계에서 북한이 노력을 할 수 있고, 결실을 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급격한 체제 붕괴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접근 방법은 ‘문화’, 그 중에서도 일상이라는 미시적인 차원의 담론으로부터 출발하는 ‘민속 문화’에서의 공감대 형성하기다.

 

 

 북한사회의 변화 뿐 아니라 남한 내에서의 변화를 위해서도 대북정책의 수정은 필수불가결하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통일’은 잊혀 진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남, 북이 하나였다는 과거의 역사는 부인할 수 없으며 잊혀 수 없다. 통일의 노력도, 통일의 당위성도 공유하는 역사와 문화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정책적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은 공허한 담론에 불과할 것이다. 정책적으로 보다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은 ‘민속 문화’ 연구와 같은 남북한 모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차원의 접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실질적인 북한 사회 변화의 동력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남, 북한 축구 대결과 같은 현대적인 스포츠와 공연단의 교류만이 전부가 아니다. 평양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민속놀이의 흥겨움 속에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북한 전역에 더 많은 공단을 짓고, 쌀과 비료를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해주는 것만이 북한을 개방시키는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민속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산의 원형을 재현해보고, 또 북한의 체제에 맞게 변형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간접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대북정책, 이제는 담론을 넘어 삶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삶 속에서 한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느낄 때 통일은 당위적인 것이 되고, 통일을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삶 속에서 분단으로 인한 이질감을 줄여갈 때 통일은 위협과 두려움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삶을 위한 하나의 도약으로 인식될 수 있다. 유연함이 요구되는 대북정책에서 변치 말고 지켜야 할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통일이 다름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장기적인 과정임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는 전제일 것이다. 삶 속에서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대북정책은, 통일 역시 멀게 느껴지게 한다. 다른 왕과 다른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던 과거의 역사 속으로 돌아가는 것 그 때를 돌이켜 보며 동질성을 찾아갈 때 남북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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