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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호민지

학교 : 한동대학교

전공 : 상담과 사회복지

 

제목 : 통일에 있어서 새터민들의 교량 역할

 

  내가 북한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생활을 하면서부터다. 05학번이니 햇수로는 5년째다. 갑자기 ‘완전통제구역’ 책을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그전까지 나는 북한을 접해 볼 기회가 없었다. 북한에 관한 건 가끔 가다가 뉴스를 통해 들은 것 뿐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여러 동아리들을 살피던 중 눈에 띈 건 북한을 연구하고 조사하고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동아리였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동아리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동아리는 나로 하여금 북한에 관심을 갖게 해 주었고 북한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해주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학기 중에는 북한 관련 책을 읽고 북한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인터뷰를 했다. 방학 때에는 북한을 직접 보기 위해 금강산에도 가고, 새터민 청소년들이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를 방문하고,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복지기관도 방문하고,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주최하는 탈북자 돕기 자원봉사 수련회에도 참여했다. 그곳에서 많은 새터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터민들이 낯설거나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도 새터민들이 있고 그들과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북한에 대해 알아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가 그 동아리에 가입함으로써 북한을 생각하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북한을 마음에 품고 북한을 차근차근 알아가니 신기하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한 민족, 한 핏줄, 60여년 분단되어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한 민족이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 조사하고 알아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게는 목마름이 있었다. 북한에 대해, 그 땅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북한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에 들어온 새터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새터민은 통일부에서 만든 용어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 을 뜻하며 북한 이탈 주민, 즉 탈북자를 가리킨다. 이런 와중에 우리 학교에 있는 새터민들이 생각났다. 솔직히 그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걱정도 많이 했고 망설이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한 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해 나의 편견이 깨지고 그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새터민을 향한 편견을 갖지 말고 편하게 다가가라고 말씀하셨었다. 오히려 그런 망설임과 걱정이 새터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갔고 지금은 아주 친한 친구들이 되어 있다. 나의 아픈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도 들으면서 느낀 건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것은 각자 아픔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이고, 10년 이상을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없는 그들의 아픔이었다. 그 아픔이 전해져서 나는 울었었다. 그렇게 새터민들과 이야기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갔다. 북한 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북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고 배울 수 있었다. 새터민들과 만나 계속 교제하니 나의 관심은 새터민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새터민 관련 논문과 책을 읽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나중에는 수업 시간에 새터민에 대해 발표를 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쌓였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사람들이 새터민에 대해 많이 알기를 바랐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그래서 잠도 별로 안자고 열심히 발표 준비를 했었다. 발표는 나름 성공이었다.

  나는 나의 관심분야인 새터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새터민의 의미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지금 새터민 인구는 1만 5천명이 넘었다.(통일부, 2009년 1월 통계) 새터민 인구가 얼마인지 알고 있었는가? 물론 이것을 아는 것이 관심의 지표는 아닐지라도 관심을 갖고 있었더라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에게 또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북한과 한국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관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비록 한 민족, 한 핏줄이긴 하나, 60여년 동안 다른 체제 속에 살았기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체제 속에서 두 사회는 다른 모습으로 분화됐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다른 점은 ‘말’ 일 것이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터민들이 한국에 적응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즉,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들의 이웃인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줘야 할 것이고, 지역사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줘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줘야 할 것이다. 물론 옛날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다. 있었더라도 극히 소수일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이 이미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같은 핏줄이기에 그들의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줘야 한다. 해마다 새터민 인구가 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1만 5천명의 새터민들과 함께 살고 있다. 누구나 다 어려움을 겪듯이 이들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5년에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새터민의 사회 적응상의 어려움’ 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1위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22.7%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외에도 외로움과 고독감이 21.7%, 건강상 문제가 20.3%, 지위하락 및 할 일이 없어짐이 15.7%를 차지했다. 이런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진정 하나로 섞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외쳤던 한 민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과 북한,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한 것처럼 우리도 통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한 민족으로서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물론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치 않든 사실,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 그 자체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평화 통일을 해야 한다. 무력이나 폭력으로 하는 통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한 번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많은 상처를 입었고 아픔을 겪었다. 이런 아픔과 상처는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폭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평화 통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나는 새터민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한국 땅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기에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새터민은 북한과 한국 두 체제를 경험한 특수한 경우의 사람들로서 통일에 있어서 교량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분명히 통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그들은 두 체제를 피부로 느끼며 살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이룰 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한 뒤에 생기는 어려움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이 한국 땅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한국 땅에서 같은 민족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통일에 있어서 그들이 교량역할을 해낸다면, 우리는 그들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격려했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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