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호 북한대학원 석사-12 북한학과(정치)

 

 

북한 민주화를 위한 한국의 역할

많은 한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은 왜 “북한에서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가”고 궁금해 한다.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수백만 명이 아사하고, 살길을 찾아 수십만 명이 중국으로 탈출하는데도 전혀 반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배고파 국경을 넘었다는 죄로 공개처형을 당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며 일부 사람들은 ‘노예적 근성’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서 자란 한국 사람들의 눈으로 봐도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무지렁이 삶이고, 노예의 삶이다. 이런 북한과 남한이 합쳐진다고 가정하면 통일 그 자체가 커다란 모순투성이가 될 것이다. 체제가 비슷한 사회끼리는 충격이 크지 않지만, 이렇게 체제가 다른 두 사회가 통일 될 때의 충격은 그야말로 클 것이다.

물론 체제가 다른 동서독이 통일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 나라도 아직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통일 이전에 서독이 동독에 비해 약 2~3배 정도 경제적으로 우월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나라들은 아직도 지역 간, 서로의 문화차이 때문에 갈등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남북이 통일됐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남북한 주민의 소득격차는 30배에서 많게는 50배의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거기다 사회제도 자체가 다르다. 남한 주민들은 민주주의 사회에 익숙한 반면, 북한은 주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독재체제에 익숙하다.

동독의 경우, 아무리 사회주의라고 해도 북한처럼 병영식 독재체제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고, 때에 따라 서독의 라디오나 미국의 텔레비전도 감상할 수 있었다. 결국 동독 사람들은 통일 이전에 일정하게 자유민주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다르다. 북한은 1948년 정권수립 초기부터 태생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는 국호에 ‘인민민주주의’를 내걸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김일성이 택한 것은 스탈린식 계급독재였다.

북한정권의 탄생은 8.15해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한반도의 북녘 땅에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소련은 김일성을 내세워 북한 땅에 스탈린식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식했다.

당시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 기초해 같은 사회주의를 선택한 중국의 방식과도 달랐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비록 공산당의 영도를 받지만, 마오쩌둥(毛澤東), 저운라이(周恩來), 주더(朱德), 류사오치(劉少奇) 등 지도자들의 권력이 분할된 집단지도체제 형식이었다.

이렇게 중국의 방식과 다른 스탈린식 계급독재를 받아들인 북한은 일제식민지 기반이었던 한반도 반쪽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봉건사회에서 일제식민지를 거쳐 단번에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단계였다. 이로서 북한 주민들은 사적소유를 인정한 개인주의나 자유주의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북한 주민들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민주주의 개념조차 결여된 사회에서 살았다.

대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의 ‘인민민주주의’에 기대를 걸었다. 북한도 초기 토지개혁과 남녀평등권법령 발표, 산업국유화 등 민주개혁을 통해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듯했다. 그러한 정책들은 평생 자기 땅에서 농사짓고 싶어 하던 절대다수 농민군중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인민민주주의에 현혹되어 월북했던 남한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도 김일성이 일인독재를 구축하는 과정에 대부분 숙청당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경제기반의 빈약을 구실로 토지를 농민들로부터 다시 걷어 협동화하고, 사회주의 체제로 본격 이행하게 된다. 수령을 중심으로 한 1인 독재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김일성은 1956년 소련파, 연안파들을 숙청한 다음 주체사상을 모토로 한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내걸고 독재국가를 건설했다. 그만큼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으로부터도 변질된 사회였기 때문이다.

60년대 들어 소련(흐루시초프)의 대국주의, 수정주의 정책에 반기를 둔 북한은 주체사상을 사회에 확산시키고 수령 우상화를 확립해 오늘날 북한 주민들을 우매화시켰다.

주체사상은 본질상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보편적 자기중심사상이지만, 북한은 교묘하게 주체사상을 혁명과 건설이론에 연관시켜 “인민이 승리하자면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고 수령론에 귀결시켰다. 이런 사상교양을 강제적으로 받은 북한 주민들은 “수령을 성인(聖人)으로, 절대로 대들면 안 되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이 말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실례가 있다. 얼마 전 중국 상하이TV는 북핵 실험이후 최초로 북한에 들어가 취재를 한 5부작으로 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거기에는 수령에게 우매화된 주민들의 안타까운 장면이 나온다. 몇 년 전, 자원봉사를 위해 북한에 들어간 한 네팔의사가 어느 한 지방의 1,000여명 백내장 환자들의 눈을 치료해주었다. 치료를 마치고 네팔 의사가 환자들의 눈을 풀어주자, 그들은 저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로 몰려가 ‘충성’을 맹세하다 못해 “자신이 못다 한 충성을 자식들이 대를 잇도록 하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환자를 치료해준 네팔의사에 대한 고마움은 뒷전이다. 환자들의 눈에는 그 의사도 ‘수령의 부하’로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사고의식을 모두 수령에게 압수당했다. 그래서 자원봉사로 자신들을 치료해준 의사대신 먼저 김부자의 초상화를 우러러 만세를 부르는 것이다.

이와 달리 8.15해방 후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부고속도로를 닦고,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창조했고, ‘새마을 운동’을 벌이며 농촌을 진흥시켰다. 그리고 ‘88서울 올림픽’ 개최, ‘2002 한일월드컵’개최를 통해 국제적 위상도 떨쳤다.

북한과 같은 출발선에서 떠난 한국은 이미 ‘토끼와 거부기’의 동화처럼 북한을 멀리 따돌리고 달려왔다. 이미 남북한 경제격차는 5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뤄진 결실이다.

만약 한국이 북한처럼 공산주의를 선택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가 상상하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이다. 북한은 인민에게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 살라는 집단주의를 교육받는다. 개인은 전체의 일부분으로, 전체에 함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신문에 난 수령의 사진을 깔고 앉았다는 이유로, 술을 마시고 수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잡혀온 사람들이 근 20만 명에 달한다. 수령의 교시와 말씀이 법보다 위에 있는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단어는 사치에 불과한 소리다.

세계관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대학부터 학생들은 수령의 사상을 다른 전공과목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대학생들은 모두 군대식으로 아침에 도열훈련을 하고, 밤에 잠잘 때도 점검을 하는 등 자유행동을 일체 금한다.

이런 동토(凍土)의 땅에서 어찌 자유의 훈풍을 기대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헌법상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권력의 불법적 행사에 대하여 그 복종을 거부하거나 실력행사를 통하여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 4.19시민혁명이나, 5.18광주운동, 6.10항쟁을 통해 검증된 사례이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에 “언론, 출판,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국가의 이익에 반할 때는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북한 정권은 인민을 말하는 소와 같은 짐승으로 만들었다. 소가 주인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는가?”

이처럼 북한에서 민주주의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민주화는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중히 여기고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때 비로소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북한 민주화는 북한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독재에 항거해 주민 스스로가 들고 일어나 자유를 찾고 사람이 살만한 보편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 때 한국도 북한의 변화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어떤 역할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남북통일에 대해 우려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원래 우린 하나였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명분도 점점 식어간다. 만약 통일 되더라도 낙후한 북한 경제를 살리자면 천문학적인 재정이 필요한데, 그러면 결국 자신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우리 세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러한 두려움이 단시간 내에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남북통일은 분명하게 우리 민족 자체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남북통일을 위한 준비로서 북한을 먼저 민주화 시켜 보편적인 인간이 사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통일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보다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화를 이룬 다음 사회를 민주주의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북한 문제 해결의 수순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지해야 한다. 한국에는 4.19시민혁명이나 6.10항쟁 등 훌륭한 민주주의 경험들이 있다. 그 민주화 경험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수시켜 그들 자체가 자기의 권리와 소중한 인권을 지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앞장에는 한국의 과거 운동단체들이 북한의 본질을 바로 보고 자기의 훌륭한 경험을 북한의 청년들, 특히 탈북자들에게 배워주어야 한다. 북한의 독재를 가려보지 못하고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내세운 지도자를 독재자로 규정하지 말고 진실로 수천만 군중을 혹사시켜 세습왕조를 꾸리는 북한의 진짜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불러야 한다.

북한처럼 굳어진 독재사회를 민주화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마치 한국이 건국이후 겪었던 민주화 운동 역사를 북한에서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나 미래 한반도 선진 국가 건설도 보편적 민주주의 질서가 선 땅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계약파기나, 금강산 관광 파탄과 같은 파행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 국가가 서로 통일한다는 것은 기름과 물처럼 전혀 혼합되지 않고 오히려 동서독처럼 통일증후군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해 성공한 대한민국이 북한을 민주화하는 전초기지가 되고 충분한 에너지 공급원천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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