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숙이는 누가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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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한을 떠난 지도 어느덧 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따뜻한 성원과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는 하나원의 생활이 꿈만 같다. 정말 이곳은 자유를 억압 받고 최하의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천국이다. 너무 많은 것을 빼앗기고 힘들게 살던 곳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나의 고향은 북부내륙 압록강변의 자그마한 농촌마을이다. 예전에는 부근에서 경치가 아름답고 땅이 비옥하여 사람들의 선망의 거처지로 유명하던 고장이지만 오늘날은 사람도 땅도 상처받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나는 여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쭉 살아왔다. 군사복무의 기간을 빼고는 정말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농사일을 배웠고 농장 분 조장 <농장의 말단 형성 책임자> 으로 수년간 일했다. 사람들은 흔히 고향에 대한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려고 한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고향이지만 아름다운추억들로 고향을 단장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가슴 아픈 추억들이 나의 추억 속에 기억 되여 있다.
그 중에는 짓궂게 나의 시선에 와 닿아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한 여인의 불행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본의 아니지만 어쩌면 참혹한 그 여인의 짧은 운명 속에 나란 사람의 흔적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추억이 더욱더 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여인이 지금 살아 있으면 삼십대 중반의 순박하고 전형적인 농촌토배기이다. 그의 이름은 금숙이였다. 내가 그 여인을 처음 만난 것은 분 조장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한 그날 이였다. 쌀쌀한 봄바람이 대기를 차게 하지만 약동하는 새 생명의 출생을 알리며 산과 들이 파랗게 물들던 5년 전 어느 새벽이었다. “ 동무들! 경애하는 장군님과 당의 크나 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의하여 리청년동맹 사업을 하던 광명동무가 1반2분조 분 조장으로 임영 되였습니다. 동무들은 새 분 조장 동무의 사업을 적극 적으로 받들어 분조를 당이 바라는 모범 분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임 발표차로 작업반에 내려온 리당비서의 부임소개 말 이였다. 나는 누렇게 뜬 얼굴로 내 앞에 주런히 서 있는 분 조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주의 깊게 뜯어보며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없으니 동무들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리 서로 돕고 이끌면서 잘 해 봅시다.” 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분조 인원 출석부터 시작하였다. 20명중 1명이 결석 이였다.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분조장이 새로 온다는데 대가리 찜질도 안 해!” 하며 “ 이 동무는 어째 안 나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마 몸이 많이 말짼것 <아픈 것> 같습니다. 그에 미네 <아줌마> 쩍하면 결근인데 …….” 하고 분조에서 제일 연령이 많은 선옥이라는 아주머니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분조장이 없는 동안 대리 일 을 해온 영철 이에게 금숙이의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진단서가 없다는 것이다. “ 아니 진단서도 떼지 않고 아프다면 누가 곧이 믿소. 이건 무단이요. 이 바쁜 농사철에 무단이 뭐요? 무단이! 명심하시오. 내가 분 조장으로 있는 한 보고 없이 출근하지 않는 동무들에 대해선 절대로 용서 하지 않겠소. 지금이 어떤 때요. 제국주의자들의 고립 암살 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 엄중한 시기가 아니요. 이렇게 혁명성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장군님께 충성하고 붉은 기를 지키겠소. 모두 높은 혁명적 각오를 가지고 맡은 혁명 과업 수행에 투신합시다.” 전에 청년동맹원들 앞에서 초 혁명적 언사로 그들을 현옥시키던 버릇이 살아 나 나도 모르게 정치적 발언이 거침없이 나왔다. 분 조원들은 너무도 귀에 못 박히게 들어서 그런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덤덤히 서 있었다. 나는 이들을 다스리자면 무척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첫날 작업임무를 주어 분조원들을 현장에 내보냈다. 그런 다음 영철이와 함께 금숙이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야 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농천 문화주택이 줄줄이 늘어선 마을 뒤쪽, 남자의 이라곤 한 번도 가지 않은 것 같은 낡은 집,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프다고 출근을 하지 않은 금숙은 어디에 간지 없고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때때로 출근하지 않는다던 선옥아줌마의 말이 생각나면서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 이 사람은 대채 어떤 사람이요?” 하고 나는 영철에게 물었다. 그러자 영철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 분조장 너무 괘씸하게 생각 말게.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야.” 하고 말을 시작했다. “ 금숙이는 어릴 적부터 나와 한동네서 살아서 잘 알지. 원래 마음이 곱고 일도 잘했소. 근데 풍파를 많이 겪더니 몸도 마음도 다쳤수다. 솔직히 금숙이 말고도 때때로 출근하지 않는 분조 원들이 많소. 오늘은 리당비서가 새 분조 장을 데리고 내려온다니 할 수 없이 다 나온 것이요. 분조 원들의 얼굴을 보오. 어디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 있소? 식량이 없어서 죽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거의 모두> 이요. 분 조장 사업하기 헐치<쉽지> 않을 것이요.” 영철은 담배 쌈지에서 독한 써레기 <담배 잎을 썰어 말린 것>를 꺼내 자기도 한 대 말고 나에게도 권했다. 독하고 쓴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자기가 당한 일이기라도 한 듯 힘들게 말을 이었다. “ 금숙이 남편은 교화 소에서 죽고 없소. 혹 2년 전 작업소 벼2가마니를 도적질하려다 잡혀 재판 받았던 최명호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소?” 생각났다. 그때 전국적으로 농산물 침해 현상을 철저히 없앨 데 대한 김정일의 방침이 내려졌었다. 엄중한 자는 공개 총살한다는 보안성 포고문도 발표 됐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시, 군들에서 경쟁적으로 공개 사형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화소, 노동단련대에 끌려갔다. 우리 농장에서는 최명호가 시범으로 재판을 받고 3년의 징역을 갔었다. 그 최명호가 금숙이의 남편이라니……. 최명호란 사람에 대해서는 낟알 도적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었다. 나는 내가 이제부터 데리고 일해야 할 금숙이에 대해서 더욱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 좀 자세히 말해 주시오. 최명호가 도적질을 했다면 금숙이도 알고 있었을 텐데 대체 왜 말리지 못했답니까? 깨끗한 비럭< 동냥> 질은 해도 더러운 도적질은 하지 말라고 했건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소. 그것도 종자 벼 이었다면서요. 농사군은 죽어도 종자는 벼고 죽는다고 했건만 넝사 짓는 사람이 종자를 훔쳤다는 건 정말 용서 할 수 없는 일이요.” 나는 저도 모르게 격분을 터트렸다. 그러자 영철이는 유심한 눈으로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 분조장도 그 같은 일을 겪으면 도적질이 아니라 강도질이라도 할 것이요.” 하고 툭 내쏘아 붙였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대체 어떤 일을 당했단 말이요?” 나는 심각하게 물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요. 최명호는 나와 중학교 동창이었소.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가 10년 만에 돌아왔는데 고향에는 따뜻하게 반겨줄 사람 하나 없었소. 자식이라고는 명호밖에 없었던 부모들은 <고난의 행군> 때 굶어 죽었소. 고향에 돌아 온 명호는 너무도 억이 막혀 눈물만 흘렸었소.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명호는 눈앞이 막막하여 동창생들 집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밤낮 술로 멍든 가슴을 달랬소. 그런 그를 동정하고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 바로 어릴 적 아래윗집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금숙이였소. 그때 금숙이도 홀어머니를 잃고 혼자 살았는데 자기와 같은 처지의 명호가 불쌍하여 위로도 해주면서 돌보아주었지.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서로 의지가 되고 마음이 통하여 결혼식도 못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고맙고 소중한 두 사람이 만났으니 ka들이 부러워 할 만큼 금슬이 좋았지. 그러나 그 달콤한 생활이 오래가지 못했소. 가난은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그 가난이 화근이 되었소. 명호가 일을 저지른 날이 바로 금숙이가 아이를 낳은 날이었소. 딸을 낳았는데 ……. 첫딸은 금 딸이라 좋아해야할 명호의 마음은 괴로웠소. 해쓱한 산모에게 쌀밥과 미역국은 고사하고 당장 끌여먹을 옥수수 한 알 없었던 것이요. 풀죽으로 그날그날을 살아왔는데 산모에게 풀죽을 먹일 순 없어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세월이 야박하니 사람들의 인심도 야박하여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게는 쌀을 꾸어줄 사람이 없었소. 그래서 그날 우리 친구들이 쌀 3kg과 미역 한 꼭지를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을 보고 어린애처럼 울던 명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소. 우리들도 풍족한 생활을 못하니 고작 모았다는 게 그것밖에 없어 미안하기 그지없었소. 명호는 그날 나에게 가정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놈은 장가드는 것도 죄라고 하면서 가슴을 쥐여 뜯으며 눈물을 흘렸소. 그렇게 되어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요.”영철의 눈에서 무엇인가 울컥 솟구칠 것 같았다. 이제는 명호가 어찌하여 도적질을 하게 되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이렇게 짐작하는 나의 생각을 끊으며 영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것이 기본 문제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소.” “아니 다른 이유라니요?” 내가 놀라 서 물어 보았지만 그는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며 선뜻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분명히 믿지 못할 사람에게는 선뜻 이야기 하지 못할 말인 것 같았다. 더 이상 다그쳐 묻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던 영철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금숙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났지만 대체 금숙이는 집을 비워 놓고 어디에 갔을까?
2
하루 작업을 끝마치고 작업총화를 하면서 나는 분조 원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세심히 관찰하였다. 정말 영철의 말대로 생기 있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도 금숙이처럼 나름대로의 설음이 있는 것일까? 이제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내가 이들을 끌고 나갈 수 있을까?> 아참과 같은 호기가 내게서 이미 사라졌다. 나 자신도 나의 자신감이 하루도 못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관리위원회 <농장을 운영하는 지도 기관>의 총모임에 참여했다가 집에 오니 퍽 늦은 밤이었다. 첫날 출근인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문득 금숙의 생각이 떠올랐다. 옷을 주어 입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지만 다행히도 그의 집에는 석유 등잔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 그녀가 늦게 집에 돌아온 것일까? “계십니까?” 하고 인기척을 내고 집에 들어서니 어떤 사람이 밤중에 혼자 사는 여인의 집에 왔는가하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희미한 등잔불에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야위어서 온 얼굴에 광대뼈만 앙상하였다. 정말 항간에서 어린아이들이 말하듯이 전진하는 광대뼈에 후진하는 두볼 이였다. 영철의 말대로라면 삼십대 중반이었을 그녀의 얼굴은 나이와 다르게 늙어있었다. 나는 우선 본능적으로 집안을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 석유등잔 연기에 까맣게 변한 벽과 천정, 진흙으로 쌓은 부엌, 삼화토<북한에서 세 가지 훍을 섞어서 만든 것>온돌위에 퍼런 비닐을 조각조각 이어서 깔아놓은 장판…….정말 서발 막대기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이 쪼들리고 가난한 살림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서너 살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살이 없이 비쩍 마른 모습이 소림이 끼칠 정도로 야위었다. 이런 환경을 보니 일하러 나오지 않는다고 찾아온 내 자신이 미친놈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할 말은 잊고 서 있다가 “식사는 하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누구시냐고요?” 하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아…….네. 새로 온 1반 2분조 분조장이요.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아서 찾아왔소. 오늘 어디 갔었소?” “아니요 아파서 못 나갔어요.” 분조장이라는 말을 듣고 금숙이는 대번에 쌀쌀한 기운을 풍기며 딱딱하게 잘라 말했다. 너무도 살기 힘드니 악만 남아 나 같은 사람은 마주치기 조차 싫을 것이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왜인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여인에게만은 친절해지고 싶었다. “이보시오. 몹시 힘든 것 같은데 애로 되는 게 있으면 말하세요. 분조는 한 가정이라는데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지 알겠소. 분조일이 잘 되자고 해도 분조 원들 가정일이 잘돼야 하잖소! 우리 같이 힘든 문제들을 해결해 봅시다.”나는 될수록 친절해 보이려고 그녀에게 속에 없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애로 되는 거 없어요. 그리고 며칠 일하러 나가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 아세요.”하고 말했다. 불쾌했지만 나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첫날부터 그녀와 친숙한 대화를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집을 나섰다. 집에 와서도 야윈 얼굴을 한 그녀의 쌀쌀한 태도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분 조장 사업이 처음부터 시련을 겪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담담하였다. 그리고 영철이가 말하던 그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도 무척 궁금하였다. 밤을 그냥 보내기에는 그 다른 이유를 알고 싶었던 나는 술 한 병을 꽁무니에 차고 영철의 집으로 갔다. 야심한 밤에 찾아 온 나를 보고 영철은 몹시 놀라워했다. “형님, 제가 분 조장 구실을 바로 할 수 있게 형님이 도와주시면 좋겠다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나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고요. 또 분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선배인 형님이 졸 잘 도와주소.” 나는 이렇게 말을 떼고 술병을 꺼내 놓았다. 영철의 주량은 쉬원치 않았다. 술 두 잔에 혀가 꼬부라진다. 나는 이때다. 돌부처도 술 마시면 말을 한다지?…….하고 생각하며 “형님, 내전에 금숙아주머니 집에 갔었는데 살림이 형편없더구먼. 그 딸아이도 말이 아니고요. 세 살이나 네 살은 되겠는데 정말 불쌍해요. 남편만 있었어도 그 지경은 아니겠는데. 명호는 대체 왜 그랬대요?”하고 슬쩍 물었다. 이미 취기가 오른 영철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대 는데. 명호 자식이 열 받아서 그런 지랄을 했지.”하고 말했다. “아니, 왜. 왜 열 받았는데요?” “그렇게 됐소. 그날 저녁 그놈이 연구실 경비<북한에서 김일성 연구실 경호를 위해 기업소별로 교대로 본다.>에 나갔지. 그런데 작업반장이 와서 명호보고 일 좀 같이 하자고 하니 할 수 없이 따라 갔는데 반장이 종자벼를 창고에서 두가마니 포장하라고 했다나. 그래서 다 포장하니 이제 승용차가 오면 실어 보내야 한다면서 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는구먼. 좀 기다리니 차가 왔는데 보니까 군당 조직비서 승용차야. 이걸 왜 실어 보내는가 물어보니 군당조직비서 딸이 결혼을 하는데 보낸다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녀석의 눈에 불이 붙었지. 상놈들은 여편네 해산하고도 먹일 쌀알이 없어서 헉헉 거리는데 당 간부란 새끼들은 딸 결혼식한다고 국가 쌀을 뇌물로 받아 처먹어? 그리고도 우리보고 사회주의를 지키라고. 네놈들이 처먹는데 나라고 못 먹을까. 직접 농사를 짓는 우리가 주인이지. 하는 생각에 이 명호 녀석이 작업반장보고 벼를 좀 달라고 했다나. 그렇게 얻은 볏가마니를 들고 나오다가 순찰에 걸렸지. 그런데 그게 종자벼라 농사를 망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행위를 했다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됐지. 명호가 신문관에게 반장과 조직비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놈들은 멀쩡하고 명호만 당했지. 하긴 어느 누가 힘 있는 놈한테 삿대질을 하겠나. 그저 불쌍한건 우리 상놈들이지. 그놈 교역 살이 끝나면 돌아오겠지 했는데 견디지 못하고 작년에 죽어 버렸지.” “아니, 정말 일이 그렇게 됐다면 중앙에 신소를 하면 되잖소?” “금숙이 그 여편네가 도당에까지 신소를 했는데 가재는 게 편인지라 그놈이 그놈 이였어.” 정말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혹간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의 가까운데서 일어난 일이라 놀랍기만 했다. 넋 나간 듯이 앉아있는 나를 보며 영철이 말을 이었다. “해산한지 얼마 않있어 남편이 잡혀가니 몸에 상처 있고 마음에 상처 있는 금숙이는 그만 결핵에 걸렸지. 금숙이 딸년을 보았지? 네 살짜리가 영양실조가 와서 서지도 못하잖아. 그 애는 차라리 죽기보다 못해. 그러니까 분 조장! 너무 달구채지 말고. 이젠 악만 남아서 무서운 것도 몰라. 그래서 전에 분조장도 아예 금숙이는 없는 사람으로 치곤했지. 괜히 덧굴다가 망신만 당하네.” 그녀에 대한 동정심리 나의 마음에 자리 잡혔다. 나는 영철의 말대로 그녀는 편안히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방심하기로 결심했다.
3
내가 분 조장 사업을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나고 또 반년이 지나간 가을날이었다. 농장에서는 제때에 볏가을을 끝내기 위해 들볶고 있었다. 군안의 기관, 기업소, 중학교에서 나온 농촌 지원자들로 뒤덮인 벌판의 여기저기에 붉은 기가 펄럭이고 “모드가 모내기 전투에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살은 곧 사회주의다!” 라고 쓴 구호판들이 누에 띈다. 또 한쪽에는 군경제선동대 <선전을 위하여 군당에 배속된 예술단체>가 불어대는 나팔이 문구마다 힘이 들어가는 억양 높은 현장 방송을 해댄다. 나는 분조 원들을 데리고 낫으로 벼를 베고 있었다. 소란한 주위와는 아무 상관없듯이 나의 마음은 온통 아침에 벌어 졌던 사건으로 울적하다. 오늘 아침 농촌 관리 위원회에서는 농장 원들의 출근율을 높이기 위해 농잔 적으로 조회를 했다. 관리위원장이 출석체크를 시작하자 나는 괜스레 마음이 불안하였다. 금숙이가 출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2년간 나는 처음 결심한대로 금숙이에 대해서는 배려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권한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의 상관들은 그러는 나를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특히 관리 위원장은 내가 원칙성이 없어서 분조 원들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회의를 할 때마다 욕하곤 하였다. 나는 속으로 <네가 한번 해봐라. 너는 책상머리에서 큰소리치면 다지만 난 직접 사람을 다루어야 해. 먹을 것도 안주는데 사람들이 일을 하게 뭐야. 나도 관리위원장이면 너보다 훨씬 더 큰 소리 칠 수 있어.>하고 끙끙 거렸다. 그런데 오늘도 그 관리위원장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찰떡같은 욕을 먹을 수 있었다. “1반2조 분 조장! 누가 안 나왔어?”관리위원장이 소리친다. “금숙아주머니가 아파서 못나왔습니다.” “또 금숙이야. 야! 너 분조 장이라는 게 물렁물렁해가지고…….그렇게 감싸고도니까 분조 원들이 그 모양 아니야. 그에메네짝은 왜 또 아프대? 지금이 어느 때야. 전투란 말이야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아프다 고해서 원수들이 가만있는 대? 썩어져도 논두렁에서 죽으라고 해. 이런 저런 사정 다 봐주고 나면 붉은 기는 누가 지켜? 빨리 가서 당장 데려와. 안 나오면 내가 직접 가겠어,”이른 아침에 금숙의 집에 들렀던 나는 결핵으로 고생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으나 할 수 없이 또 데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몇 번씩이나 찾아가 진단서를 떼라고 했으나 그녀의 말이 병원 의사들도 고급 담배 같은 뇌물이 없으면 아무리 아파도 진단서를 떼 주지 않는다고 했다. 당장 먹을 쌀도 없는데 담배 살 돈이 있을 수가 없었다. 문을 여니 기침을 하며 힘겹게 쉬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 관리위원장이 하도 성화여서 또 왔소. 좀 나가서 관리위원장에게 사정하고 들어오면 안 되겠소?”그동안 나에 대한 인식이 좋아 잘 대해주던 금숙이 별안간 “별안간 그 새끼 내 앞에 당장 오라하오. 사람이 아프다는데 제 여편네는 꽃방석에 앉혀놓고 놀리면서 왜 나 같은 년한테만 이러는 거요? 그 새끼는 심장도 없다오.” 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에기 당장 때려치워야지. 이놈의 노릇 힘들어서 못해먹겠구나. 마음 편히 시키는 일이나 하자.” 하며 나가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관리위원장이 불쑥 들어왔다. 나는 몹시 당황하였다. 아마 내 뒤를 곧잘 따라온 모양이다. 밖에서 금숙이가 소리 친 것을 다 들었는지 얼굴이 벌개 가지고 화가 잔뜩 난 게 눈에서 독기가 번뜩였다. “야! 이 쌍 개간 나야. 왔다. 다시 한 번 주둥아리 놀려봐. 뭐 어쩌고 어째? 그래 나는 심장이 없다. 네년 단련 대에 가지 않겠으면 발리 나와. 죽어도 논밭에 업어져 죽으란 말이야.” 관리위원장의 말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저것도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가? 관리위원장이 없는 데서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던 금숙이지만 정작 앞에 나타나자 당황하여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결국 금숙이는 아픈 몸을 끌고 논밭으로 나왔고 나는 몰인정한 관리위원장에게서 듣기 거북한 욕을 배불리 먹었다. 논밭에서 일을 하면서 나의 시선은 자꾸 앉아서 엉덩이를 논바닥에서 글면서 한포기 두포기 힘겹게 베를 베는 금숙에게 간다. 아! 이것이 사회주위 협동화의 무자비성인가? 어쩌면 순하던 사람도 간부가 되면 포악해지는 것인가. 당에 잘 보여 승진하려는 자들의 공명심. 맹목적인 충성심이 그들을 야만으로 만드나 본다. 인민들의 빈궁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들만의 정권유지를 위해 무조건 권력투쟁을 일삼는 김정일식 정치체제의 산물이다. 나도 야만인이 되기 전에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주머니, 앉아 좀 쉬오. 누가 아주머니 보고 일하라오. 가만히 앉아만 있소.” 나는 동정어린 목소리로 금숙에게 말했다. “분 조장. 미안하오. 나 때문에 분 조장이 이때까지 힘들었다는 거 다 아오. 내 몸이 아프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소.” “아주머니, 그런 소리 마오. 아주머니 병이야 내가 알 재요. 내가 욕 좀 먹으면 어떠오? 빨리 아주머니 병이 나아야겠는데 …….” “고마워요. 분조장 내 죽어도 있지 않을게요.” 나와 금숙이가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데 영철이가 다가왔다. “부조장, 담배한대 태우지.” 우리는 썰기 담배를 한 대씩 말아 붙였다. “분 조장,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어찌 보면 우리가 중학교때 배우던 봉건시대 노예들 같지 않아? 꼭 노예들이여야 내 몰면 내 모는 대로 몰리고 입이 있어도 할 소리 못하고 …….농포<농민>라 자식들까지 농포일 시키고 이렇게 살아 무슨 낙이 있겠어?” 나와 영철은 2년 사이에 이런 속마음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형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요. 누가 듣고 고발하면 찍소리 못하고 죽소.” “내 자네 앞이니 이런 소리 하지. 누구에게 속을 터놓겠냐. 정말 요즘은 내가 사람 같지 않아 불이나 못살겠다. 이 개 같은 인생 언제면 바뀌겠는지.” “형님, 아무 때든 해뜰 날이 오겠지. 나도 일 그만 둘까 하오. 이런 노릇 이젠 지긋지긋해서 못 해 먹겠소. 이제 좀 있으면 나도 저 관리위원장처럼 야만인이 될 것 같아 무섭소.” 우리는 이렇게 맥없이 앉아 한 시간 경이나 속 타는 소리를 하였다. 이때 별안간 “금숙아!” “봄이 엄마!” 하고 다급히 찾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 보니 글쎄 금숙이가 피를 토하고 논밭에 쓰러진 게 아닌가. 나와 영철이는 나는 듯이 달려가 그녀를 흔들며 소리 쳤다. “아주머니, 이 무슨 일이요? 눈을 뜨오.” “봄이 엄마, 왜 이러나. 죽으면 안 돼!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냐?” 여기저기서 분조 원들과 농촌지원자들이 달려와 왁작 거렸다. 의학 상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응급치료를 해보려고 덤비었다. 당황하여 소리만 지르던 나는 무조건 그녀를 들춰 없고 병원으로 뛰었다. 병원에 가서 내려놓으니 의사들이 인공호흡을 하고 주사를 놓고 야단 법석 이였다. “원장선생님! 어떻습니까?”내가 다급히 묻자 머리가 흰 원장은 “힘들 것 같소. 각혈을 했는데 이미 병이 깊어 자신이 없구먼. 아무튼 최선을 다해 보겠소.”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딱히 말할 순 없지만 내가 그녀를 끌고 나와 죽게 만든 것 같았다. 내가 왜 완강히 관리위원장을 설득하지 못했는지. 그놈하고 싸워서라도 금숙이를 그냥 집에 두어야 했는데. 무능하고 약한 내가 저주스러웠다. “선생님, 이 아주머니 죽으면 안 됩니다. 이 여자가 죽으면 그 애는 어떻게 합니까?” 나는 애타게 부르짖었다. 이때 “봄이야. 봄이야.” 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딸을 찾고 있었다.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어떻게 하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 남아보려고 아픈 몸으로 억척같이 일하던 금숙이,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딸에게만은 아빠 몫까지 합쳐 사랑을 주려 했던 봄이 엄마……. 그런 그녀가 소리 없이 죽어 가고 있었다. 불쌍한 금숙이.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 나이의 그녀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원망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가 그녀가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울어 줄 부모 형제도 없는 그녀. 분조 원들도 불쌍한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때 리당비서와 관리위원장이 병원에 들어섰다. 원장으로부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리당비서가 “리금숙동무는 장군님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고 조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다 현장에서 순직했소. 우리 모두 금숙 동무를 잊지 맙시다.” 하고 말했다. 뭐가 충성심이고 뭐가 애국이란 말인가. 우리 백성들은 누굴 위해 굶주림에 일하다 저렇게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맹목적 충성심을 간직하고 굶주림을 참아가며 뼈 빠지게 일하다 죽어야 충신이고 애국자인 이 세상. 불쌍한 금숙이를 죽음으로 내몰고 버젓이 대가리를 쳐들고 서 있는 관리위원장. 잘못된 세상에서 태어나 먹지 못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봄이에게서 아빠 엄마를 빼앗아간 이 더러움 세상. 나의 눈에는 불이 일고 나의 가슴은 울분과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살아남으려면 가슴속에 간직하는 수밖에 없다. 너무 억울했던 이때를 다시 글로 쓰니 그때의 분노와 울분이 되살아난다. 그 땅에서는 수많은 금숙이들이 소리 없이 매일 죽어간다. 원한의 그 땅에서 그 체제를 절규하며 먼저 간 금숙이들의 영혼에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어딘가에 살아 있을 봄이에 대한 동정심을 금할 수 없다. 언제면 그들을 구하고 삼천리 강산, 칠천만 우리 한겨레가 하나 될 날이 올 것인지…….



